엑셀 초보가 집안 살림표 제대로 만드는 방법

가계부보다 먼저 만든 건 냉장고 목록이었어요
얼마 전 냉장고를 열었다가 같은 두부가 3모나 있는 걸 보고 조금 허탈했어요. 할인할 때 사둔 건 기억나는데, 이미 사둔 걸 까맣게 잊은 거죠. 그 뒤로 엑셀에 식재료 목록을 아주 간단히 적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장보기 금액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대단한 함수보다 중요한 건 매일 보기 편한 표였어요.
엑셀은 회사에서만 쓰는 프로그램처럼 느껴지지만, 살림에는 꽤 잘 맞습니다. 장보기 목록, 공과금 납부일, 냉동실 재고, 아이 준비물, 가족 생일 선물 예산까지 한곳에 모아두면 머릿속으로 기억할 일이 줄어들어요. 저는 복잡하게 꾸민 파일보다 10초 안에 입력할 수 있는 표가 오래 갔습니다.
처음 표는 5칸이면 충분해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만들면 며칠 못 갑니다. 제가 제일 오래 쓰는 기본 표는 항목, 날짜, 금액, 장소, 메모 이렇게 5칸이에요. 예를 들어 장보기 기록이라면 항목에는 우유, 날짜에는 산 날, 금액에는 실제 결제 금액, 장소에는 마트 이름, 메모에는 할인 여부를 적습니다.
- 항목: 무엇을 샀는지 짧게 적기
- 날짜: 구입일이나 납부일 입력
- 금액: 원 단위로 숫자만 입력
- 장소: 마트, 온라인몰, 동네가게 등
- 메모: 1+1, 쿠폰, 유통기한 같은 참고 내용
금액 칸에는 쉼표를 직접 찍지 말고 숫자만 넣는 게 좋아요. 나중에 합계를 낼 때 훨씬 편합니다. 입력한 뒤 셀 서식에서 숫자 형식을 바꾸면 12000이 12,000처럼 보이니 보기에도 깔끔하고 계산도 막히지 않습니다.
살림 엑셀에서 제일 자주 쓰는 기능
제가 살림표에서 가장 많이 쓰는 건 합계, 필터, 조건부 서식입니다. 함수 이름만 들으면 어렵게 느껴지는데, 실제로는 반복되는 계산을 엑셀이 대신 해주는 정도예요. 예를 들어 한 달 식비를 알고 싶다면 금액 칸 아래에 SUM 함수를 넣으면 됩니다.
필터는 더 실용적이에요. 장소를 기준으로 온라인몰 결제만 모아볼 수도 있고, 메모에 쿠폰이라고 적힌 것만 따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 필터로 대형마트 지출만 확인하는데, 생각보다 간식과 즉석식품 비중이 커서 장보기 습관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됐어요.
조건부 서식은 냉장고 목록에 특히 좋습니다. 유통기한이 3일 이하로 남은 식재료를 노란색으로 표시하게 해두면 눈에 바로 들어와요. 날짜 계산이 어렵다면 처음에는 수동으로 색을 칠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남은 식재료를 보이게 만드는 거니까요.
집에서 바로 쓰기 좋은 엑셀 표 4가지
1. 냉장고 재고표
식재료명, 보관 위치, 구입일, 유통기한, 수량을 적습니다. 냉장, 냉동, 실온을 구분해두면 같은 재료를 또 사는 일이 줄어요. 냉동실에 넣은 고기나 떡은 특히 날짜를 잊기 쉬워서 엑셀에 적어두면 버리는 양이 확실히 줄었습니다.
2. 월별 고정비 표
전기요금, 가스요금, 통신비, 보험료, 구독료처럼 매달 빠지는 돈을 한 줄씩 적습니다. 납부일과 자동이체 계좌까지 써두면 연체 걱정이 줄고, 안 쓰는 구독을 찾기도 쉬워요. 9,900원짜리 구독도 1년이면 118,800원이라 그냥 넘기기 아깝습니다.
3. 장보기 가격 비교표
쌀, 세제, 휴지처럼 자주 사는 품목은 가격 비교표가 꽤 유용합니다. 같은 10kg 쌀도 마트 행사가는 28,000원, 온라인 쿠폰 적용가는 24,500원처럼 차이가 날 때가 있거든요. 단, 배송비까지 포함해서 적어야 실제로 싼지 알 수 있습니다.
4. 집안일 루틴표
침구 세탁, 에어컨 필터 청소, 세탁조 청소, 냉장고 닦기처럼 자주 까먹는 일을 주기별로 적어둡니다. 마지막 실행일을 입력해두면 다음 날짜를 잡기 쉬워요. 저는 세탁조 청소를 4주 간격으로 적어두니 냄새가 나고 나서야 뒤늦게 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오래 쓰려면 예쁘게보다 덜 귀찮게
엑셀 파일을 처음 만들 때 색상, 테두리, 글꼴에 시간을 많이 쓰면 시작은 그럴듯한데 유지가 어렵습니다. 저는 색은 최대 3개만 씁니다. 입력해야 하는 칸은 연한 노랑, 확인이 필요한 칸은 연한 빨강, 완료된 건 회색 정도면 충분해요.
파일 이름도 중요합니다. ‘가계부최종진짜최종’처럼 만들면 나중에 찾기 힘듭니다. 저는 ‘2026_살림표’처럼 연도와 용도를 앞에 붙여요. 시트 이름도 ‘식비’, ‘고정비’, ‘냉장고’, ‘집안일’처럼 짧게 쓰면 휴대폰에서 열어볼 때도 덜 답답합니다.
엑셀을 잘하려면 어려운 함수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살림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입력이 쉽고, 한눈에 보이고, 다음 행동이 바로 떠오르면 그걸로 충분해요. 직접 써보니 엑셀은 돈을 아끼는 도구라기보다 새는 돈과 잊은 일을 눈앞에 꺼내주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복잡한 템플릿보다 단순한 표 하나를 더 믿는 편이에요.
